당신은 천천히 눈을 깜빡입니다. 시야가 검게 점멸하였다가 푸르게 물듭니다. 유리 속에서 정지된 물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얼마나 고요했던지요. 어디선가 옅은 레몬 향이 풍겨와 물비린내와 섞입니다. 당신은 수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세상이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탐정사는 천인오쇠를 결국 막지 못했고, 당신 또한 주적에게 패배해 겨우 목숨만 건졌습니다. 세계는 그들의 뜻대로 멸망했지만, 그 형태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지구가 쩍 하고 반으로 갈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서,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연명치료를 받듯 척박한 땅 위를 기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종말 이후 거처를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던 당신은, 요코하마 외곽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높게 솟은 폐건물들이 하늘을 가려 한낮에도 밤처럼 어두운 풍경. 치안이 나쁘다고 소문난 구역입니다. 최근 어떠한 괴이 현상이 마을의 분위기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합니다. 새로운 병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떠한 전조나 증상은 없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반드시 ──를 찾아 ──려는 행동을 취합니다. 그렇게 ──한 마을 사람이 벌써 ──명째라고 하네요. 게다가……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바닥에 물고기 주검이 쌓여 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요. 텅 빈 수조는 조명장치의 색으로 그저 한없이 파랄 뿐입니다. 언젠가 보았던 하늘의 파랑이네요. 종말 이후, 줄곧 붉기만 한 하늘에 떠오른 해를 센 지도 2년. 당신은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太宰治:(예상치 못한 답변에 하, 헛웃음을 흘린다. 주변에 무언가 위험이 있는지 기척을 살폈지만, 사카구치 안고가 일부러 이런 연기를 펼칠 이유는 없었다.) 누구세요, 라니... 하하! 안고, 못 본 새 농담이 많이 늘었군? 그래도 내가 수감됐을 땐 '각별하게' 단둘이 연락을 주고 받았던 사이인데. (눈썹을 찌푸리며 웃는다.) 설마, 날 잊었다고 하진 않겠지.
坂口安吾:... ... 죄송하지만, 정말로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누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얼굴은 그저 담담하게 슬플 뿐이고,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저를... '안고', 라고 부르셨나요? 그게 제 이름인가요?
太宰治:(기이한 답변에 다자이는 일순 숨을 멈춘다. 그가 알던 사카구치 안고는 하나의 이름으로 세 가지를 능히 해내며 무언가를 숨기고 내보이는 사람이지, 이렇게 무지를 태연하게 내비칠 사람이 아니었다. 눈동자를 유심히 들여다보아도, 그곳에는 어떠한 거짓도 없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다, 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네가 그래서는 안되는 법이지. '사카구치 안고'. (사카구치에게 한걸음 다가가며) 우리에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지 않나. (옛날과는 달리, 이제는 내려다봐야 하는 오랜 친구를 지그시 쳐다본다. 떠보는 듯한 물음이다.)
坂口安吾:추억... 이라고요. (여전히 멍한 눈빛. 어떠한 감정도 실리지 않은 고요한 동공. 다가오는 당신을 말리지도 재촉하지도 않는다. 마치... 무엇이 어떻게 되든 더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 당신과 나는 친구였나요? 아니... 그 반대일 수도 있겠군요. (물끄러미 당신의 두 눈을 응시한다. 낯익고도 오래된 분노가 보인다.)
... 그러나 그 둘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해야할 중요한 일이 있어요. 그리고 돌아가야 합니다. (기묘한 의무감에 휩싸인 듯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내뱉는다.)
太宰治:(사카구치의 말에 어떠한 거짓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잠시 그를 말없이 쳐다본다. 문득 새롭게 유행하고 있는 병증에 대한 이야기가 얼핏 뇌리에 스쳤다.)
...해야한다? 무엇을? (팔짱을 끼며)
坂口安吾:찾아야 해요. 기억나지는 않지만 뭔가... 소중한 걸 잃어버렸습니다. 그것만 찾으면 돌아갈겁니다. 돌아가야만 해요. (입력된 대사를 읊는 로봇처럼 무감각하게, 그러나 애처롭게 말을 출력한다.)
太宰治:(... 계속 말을 시켜봐야 제자리걸음밖에 못 하겠군.)
(사카구치는 틀림없이 소문 속의 괴이 현상에 빠진 것이리라. 사카구치의 상태를 살피다가, 이내 그린 듯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수려한 얼굴 위로 띄워진 미소는 화려했으나 작위적이다.) 하하, 이 고지식한 모습이라니. 안고. 한참을 찾았잖나. 진짜 자네가 맞는지 확인을 해야했어. 미안해.
찾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좀 도와줄까 하는데. 응? (팔짱을 풀며 과장된 동작을 지어보인다.)
坂口安吾:... 감사합니다.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기억과 함께 말도 잃어버린 듯 고요해진다. 과묵하던 오다 사쿠와는 달리, 대화를 할 때 상대가 무안하지 않도록 말을 조금씩 붙여나가던 과거의 모습과는 아주 딴판인 모양이다.)
(당신을 보고 있던 시선은 금방 힘을 잃고, 고개가 수조를 향해 돌아간다. 수조를 얼마간 보고 있었을까, 당신에게 어떠한 언질도 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수족관의 꼭대기층 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太宰治:(사람이 아주 못 써먹을 정도가 됐군. 대체...)
(대체 소문 속의 병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총명하던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놓았을까? 사카구치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생각에 잠긴다. 두 사람 분의 발소리가 타박타박 수족관을 울린다.)
3층에는 1층까지 연결된 [대형 수족관]과 [벽면 수족관], [스탬프 테이블]이 있습니다. 옆에는 [계단]도 보이네요.
안고가 찾는 물건은 이곳에 있을까요?
太宰治:(아직까지 조명이 켜져있는 게 신기할 정도군.)
(주변을 살피며 어두컴컴한 대형 수족관의 앞으로 다가간다. 사카구치를 힐긋 뒤돌아보면 그는 여전히 멍한 얼굴이다.)
坂口安吾:... ... (벽면 수족관을 바라보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걸까? 확실한 건 당신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단 것이다.)
[대형 수족관]
1층까지 연결된 높이 5m의 대형 수조에서 고래상어, 가오리, 꼬리줄나비고기 등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수조를 통해 아래층의 모습이 얼핏 보입니다.
太宰治:(수조에 가까이 다가선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래를 살피려고 한다.)
아무리 아래를 살펴 보아도 이 위치에서는 제대로 관찰되는 게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온통 태평양에 사는 생물들뿐이네요.
太宰治:...안고. 설마하니, 자네가 찾는 게 저 활어들은 아니겠지. 상어라던가. (사카구치를 돌아보며 수족관을 가리킨다.)
坂口安吾:('안고'라는 이름 두 자에 반응하여 천천히 몸을 돌린다. 당신의 옆으로 다가간다.) ... ... 생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제가 소유하고 있었던 녀석들도... 아닌 것 같고요.
太宰治:그래, 그럼... 다른 곳을 살펴보도록 하지. (대형 수족관에게선 깔끔하게 미련을 버리고, 벽면 수족관을 향해 다가간다.)
[벽면 수족관]
이상하게도 수족관 유리 전면에 신문지가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수족관 앞에는... 이름 모를 물고기 주검들이 널브러져 있군요.
살이 썩는 향이 짙게 풍겨옵니다.
희번뜩 떠오른 물고기의 눈이 일순, 당신을 원망하듯 주시합니다.
섬뜩한 기분에 이성 판정(0/1)
太宰治:
SAN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4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감소 없음.
太宰治:이건... (손으로 입 부근을 막고 물고기 주검 사이로 발을 내딛고, 신발로 그것들을 살짝 밀어낸다. 부패 정도로 보아하니, 물고기 주검들이 꽤 오래된 것도 같았다.)
안고, 여기 와서 같이 신문지 좀 뜯어보지 않겠나? 자네가 찾는 게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사카구치를 돌아보지 않고 대충 뒤를 향해 손짓한다.)
坂口安吾:네, 알겠습니다. (기계적으로 신문지를 한장한장 떼어낸다.)
太宰治:(손을 들어올려 덜렁거리는 신문지의 끝을 잡고 밑으로 쭉 찢어버린다.)
유리를 덮고 있던 신문지가 점점 사라져갑니다.
그런데... 가리개가 사라질 수록 엄습해오는 이 불안감은 뭘까요.
안타깝게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고 들어맞았습니다.
당신과 안고는 수조 창을 통해 흐물하게 녹아버린 사체를 발견합니다.
형편없이 손상된 사체입니다.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다자이, 이성 판정.
太宰治:
SAN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감소.
坂口安吾:... 딱 맞지 않네요. 불편했을 겁니다.
太宰治:...뭐가 말이지? (갑작스레 나타난 사체의 모습에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카구치가 늘어놓는 영문 모를 소리는 무얼 말하는 것이지, 알 수 없을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坂口安吾:(다자이를 돌아보지 않고 태연하게 사체를 응시한다.) 말 그대로입니다. 아무리 수조를 찾는 게 급했다지만... 영 오답을 고른 대가는 이렇군요. 기억해둬야겠습니다.
太宰治:'수조'를 찾는다, 라... ( 끔찍하게 녹은 사체를 다시 돌아봤다. 태연한 척 했으나,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입꼬리만 겨우 끌어올리며 짓는 어색한 웃음 뿐이다.)
방금까진 무엇을 찾는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 (수조에서 눈을 떼고 발밑을 내려다본다. 질척질척한 물고기 체액들 사이에서는 끈적끈적한 소리가 났다...)
坂口安吾:(여전히 사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수조는 제가 찾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니 무엇을 찾는지 모른다는 말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건... 정신을 차려보니 이 마을, 이 수족관에 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전부 수조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 정도입니다. (팔을 들어 사체의 손목을 가리킨다.) 마을에 온 날 보았던 사람들 중 하나가 저 팔찌를 차고 있었습니다.
太宰治:(사카구치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과연, 사체의 손목에는 어떤 팔찌가 있다. 팔찌를 들여다 보려고 한다.)
사체는 짙은 색의 라피스라줄리 팔찌를 끼고 있습니다.
온통 깨져 있네요.
있으면 안 될 장소에 있다, 라는 느낌을 줍니다.
太宰治:됐어. 자네가 찾는 게 수조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다른 곳으로 가지. (물고기 주검 더미에서 빠져나오며 몸을 휙 돌려 뒤에 있던 스탬프 테이블로 걸어간다.)
[스탬프 테이블]
철제 테이블 위에 고래상어 모양 스탬프와 잉크판, 그리고 누군가의 외투 한 벌이 놓여 있습니다.
종이는 없지만 손등에라도 찍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 도무지 그럴 기분은 아니겠지만요.
太宰治:(외투를 들어올려본다.)
낡은 군청색 코트입니다.
주머니에 뭔가 들었습니다.
太宰治:(주머니를 뒤진다.)
주머니에 든 것은 지도입니다.
당신과 안고가 도착한 이 마을을 그린 지도로,
물 공장의 위치에 붉은 펜으로 표시한 흔적이 눈에 띕니다.
太宰治:안고. 물 공장에 가본 적이 있나? (지도를 사카구치에게 슬쩍 보여주며 묻는다.)
坂口安吾:물 공장이요? ... 아뇨, 저는 줄곧 이 근처에만 있었습니다. (지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 아, 다만 알고 있는 것은 있습니다. 마을에 공급되는 물은 모두 거기서 나온다고 하더군요.
太宰治:그래...? 그럼 수족관의 물도 그곳에서 나오는 것이려나. (지도 한 번 더 살핀다. 별다른 것이 없으면 지도를 접어 코트 주머니 속으로 넣는다.)
지도를 접어 주머니로 넣으려는 순간, 당신의 기민한 눈이 무언가를 잡아냅니다.
붉은 펜으로 표시한 흔적 위의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지도 뒤에는 그림이 있습니다. 눈치채지 못한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림은 높은 받침대 위 올라앉은 기괴한 이형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밀한 선화는 그 괴물의 크게 늘어진 물갈퀴 귀, 길다란 코, 사람과 닮은 손을 금방이라도 종이에서 튀어나올 듯 묘사하고 있습니다.
긴 코 끝의 둥근 원반 같은 부분엔 피를 흡수하는 빨판이 붙었고,
거대한 몸집은 인간의 덧없는 육체를 짓누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어디에서도 목격한 적 없는 끔찍한 형상입니다.
... 그림을 목격한 충격에 이성 판정.
太宰治:
SAN Roll
기준치:
79/39/15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太宰治:그럼, 이 그림은? (사카구치에게 그림을 보여준다.)
坂口安吾: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坂口安吾:... 뭡니까, 이건? (의아한 목소리로 눈살을 찌푸린다.)
太宰治:글쎄, 나보다는 자네가 더 잘 알겠지. (중얼거리다가 뭔가 깨달은 듯 탄성을 흘리며) 아, 참... 자넨 지금 아무것도 모르지? (눈썹을 찌푸리며 웃는다.)
그래, 모르면 어쩔 수 없지... 것보다,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됐나? (1년 전의 날짜가 적혀있는 지도를 천천히 접으며 눈동자만 굴려 옆을 힐긋 본다.)
坂口安吾:... ... (당신의 조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하지 못하는 것인지, 수긍의 의미로 대답하지 않는 것인지...
그 대신 한참 동안이나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찬찬히 떠올려본다. 겨우 기억을 쥐어 짜내어 더듬더듬 사건을 되짚는다.) 도스토옙스키와 천인오쇠를... 막지 못했고, 세상이 망했고, 특무과... 도 실패했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숨을 들이킨다.) 이 마을에 들어온 전후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몇 달 전쯤에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만.
太宰治:(어지간한 것은 기억하면서... '나'를 모른다고?)
그 몇 달동안 이렇게 무언가를 찾아다니기만 했나?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무엇을 찾아야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고매하신 특무과께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모양이군?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잇는다.)
하하, 사카구치 안고. 다시 한 번 묻지. '나'를 모르나?
坂口安吾:... 기억나지 않는 것에 대해 꾸짖더라도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당장 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뭘 바라십니까? (무감각한 표정에 고저없는 말투.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만이 이런 태도를 내비칠 수 있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나도 모르고요. 오직, ...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밖에는.
太宰治:(정말, 기억나지 않는 건가.)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 스탬프 테이블 위에 있던 고래 상어 모양 스탬프를 집어든다.) 그래, 도와주기로 했으니 도와야지. (중얼거리며)
坂口安吾:(당신의 혼잣말을 그저 듣기만 한다.) ... 스탬프 투어라도 하실 셈입니까? 말리진 않겠습니다.
太宰治:뭐 어때, 괜찮잖아? 어차피 몇 달째 헤매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피식 웃는다.) 헤매면서 이곳에 올 때마다 스탬프를 찍었다면 자네의 손이 남아나질 않았겠지만. (손등에 스탬프를 꾹 찍어누른다. 행동과는 달리 표정에는 별다른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 위로 그림자가 졌다.)
坂口安吾:(손등에 평범하게 귀여운 고래상어 캐릭터가 찍힌다. '당신을 모른다'라는 차가운 말, 그리고 시린 손의 온도와는 다르게 딱히 당신을 밀어내거나 꺼리지는 않는다.) 애초에 찍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스탬프 역시 제가 찾는 물건은 아니니까요. 그 물건 이외에는... 흥미 없습니다. (제 손을 잡은 당신의 손을 떨쳐내고 먼저 계단으로 향한다.)
太宰治:야박하긴. (눈을 깜빡깜빡거리다가 스탬프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뒤를 따른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산책이라도 나가듯 가볍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2층에는 3층과 연결된 [대형 수족관]이 있고, 이곳에도 [스탬프 테이블]이 있습니다. [벽면 수족관], [수조 1], [수조 2]가 있으며, 역시 [계단]이 있습니다.
太宰治:장관이군. 장관이야. (주위를 둘러보고, 3층보다 더 많은 수족관을 본 뒤 한숨처럼 내뱉는다. 이윽고 그는 길게 이어진 벽면 수족관으로 다가간다.)
2층은 3층보다 어둡습니다.
3층보다 어두운 조명 아래, 둥근 수족관 속에서 빛나는 해파리들의 모습은
마치 우주의 별처럼 아름답습니다.
[벽면 수족관]
보름달물해파리만이 가득 찬 수조입니다.
유리에 손자국 모양으로 바짝 마른 핏자국이 나 있습니다.
해파리들은 모두 건강해 보입니다.
해파리의 건강 기준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불빛처럼 흩어졌다가 어둠처럼 모이는 형태에서 이상할 정도의 생명력을 느낍니다.
누군가 관리하고 있는 걸까요?
太宰治:안고. 이 수족관은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관리하고 있는 건가? 오랫동안 비워져있었던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야. (벽면 수족관을 향해 걸어가면서 사카구치에게 말을 붙여본다.)
坂口安吾:글쎄요, ......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닐 겁니다. (물끄러미 별처럼 헤엄치는 해파리들을 바라본다.) 이곳에 숨어 들어온 이후로 사람이 드나드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太宰治:그래... 기묘한 일이로군. 하기사, 물고기 주검과 시체가 있는데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리가. (3층에서 봤던 물 공장을 상기한다. 흩어졌다가 모여들며 반짝반짝 빛나는 해파리들이 자아내는 풍경이 아름답다. 한동안 말없이 수족관을 감상하던 그는 이윽고 발걸음을 돌려 혹시나 1층이 보일까 싶어 대형 수족관 앞에 멈춰 선다. 3층에서도 살폈지만, 한번 더 살펴보고 싶었다.)
[대형 수족관]
1층까지 연결된 높이 5m의 대형 수조에는 고래상어, 가오리, 꼬리줄나비고기 등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유리에 뺨을 대고 위를 올려다보면,
3층의 조명이 희게 부서지며 시야를 채웁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그저 아름다웠을텐데 말이죠.
太宰治:(뺨에 와닿는 유리가 차갑다. 조명이 희게 산란하는 모습을 보며 눈을 살며시 찌푸렸다. 그 차가운 감각이 현실감을 일깨웠다. 가만히 이마를 대었다가, 수족관에서 떨어진다.
반대쪽에 있는 두 개의 수조로 눈을 돌린다.)
[수조 1]
꽃모자해파리들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마치 물속에서 나풀거리는 분홍빛 꽃잎 같습니다.
太宰治:예쁘군. 그렇지 않나? (수조 1로 가까이 다가서며 해파리들을 살핀다.)
해파리를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면,
수조와 스탬프 테이블 사이 빈 공간에서 무언가 질질 끌린 자국을 발견합니다.
자국은... 계단 쪽으로 이어져 있군요.
太宰治:(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누군가가 1층으로 무언가를 끌고 간 것이 분명하다.)
안고. 이걸 봐. 누가 여기, 수조 옆에 있던 걸 옮긴 모양이야. (질질 끌린 자국을 손으로 가리킨다.)
坂口安吾:(당신이 가리키는 흔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정말이네요, 이 위치면... (자국이 난 곳 주변을 살핀다.) 제법 큰 뭔가가 있었나본데요. ... 제가 찾던 물건은 아닐 것 같습니다. 무엇인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아도... 이렇게 크진 않을 거에요.
太宰治:수족관에 있을 만 하고, 계단으로 '끌어서' 옮길 수 있을 만한 것이라... (팔짱을 낀 뒤 턱에 손을 한 번 갖다대며 중얼거린다.) 수조는 아닐테고... (머리 위를 흘깃 바라보고 쯧, 혀를 찬다.) 조명이 더 밝았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됐네. 스탬프 테이블까지 살펴보고 1층으로 내려가서 살펴보면 될 일이겠지. (스탬프 테이블로 고개를 돌린다.)
[스탬프 테이블]
철제 테이블 위에 해파리 모양 스탬프와 잉크판이 놓여 있습니다.
역시 종이는 없지만 손등에는 찍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太宰治:(해파리 모양 스탬프를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핀다. 사카구치를 향해 돌아보고, 말없이 웃으며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한다. 아마도 또 도장을 찍을 심산인 것 같다.)
坂口安吾:(저항없이 순순히 말을 따른다. 스탬프가 찍히지 않은 손을 내민다.)
太宰治:(사카구치의 손등 위로 도장을 꾹 눌러찍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그와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자, 이번에는 나도 찍어볼까? 해파리는 꽤 구미가 당기거든. 상어는 질색이라서. (자신의 왼쪽 손등에도 스탬프를 꾹 누른다.)
1층으로 내려가지. 도대체 뭘 끌고 간 건지 봐야겠으니.
坂口安吾:(도장이 찍힌 손을 빤히 바라보다 문득 의문이 든다.) 해파리에게 특별히 호감을 느끼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太宰治:그다지? 있다 해도 자네는 기억 못 할테니, 관두는 게 좋을 걸. (계단 쪽으로 앞장서 걸어가며 낮게 웃음을 흘린다.)
坂口安吾:...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대화를 포기하고 당신을 따라가... 다가 발을 헛디딘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짚은 스탬프 테이블에서 종이가 하나 팔랑, 떨어진다.)
太宰治:(뒤를 돌아본다.)
坂口安吾:(엉거주춤한 자세로 눈이 마주친다... 시선을 다시 돌린다. 바닥에 떨어진 흰 종이로...)
太宰治:왜 그리 엉거주춤하게 있나? 직접 주우면 될 것을. (흰 종이 쪽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그것을 살펴본다.)
종이의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면 행운 or 관찰력 판정
太宰治:
관찰력
기준치:
95/47/19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종이에 적힌 글씨는 매우 지저분하고 어지러워 알아볼 수 있는 글씨가 얼마 없습니다.
太宰治:자네랑 비슷한 사람이 또 있었던 모양인데, 안고. (종이를 팔랑거리며 말을 잇는다.) 어딘가로 돌아가야 하고, 그곳만이 안식이라는군. 짚이는 구석이 있나? (자리에서 일어나며)
坂口安吾:(무의식 중에 가까이 다가가다가 멈칫,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손을 내밀어 종이를 건네받는다. 내용을 찬찬히 읽은 후 당신에게 종이를 다시 건넨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太宰治:흐응... (묘한 눈으로 종이를 앞뒤로 팔락이며 다시 살핀다. 딱 한 번더 살펴볼 요량으로 희미한 조명에 종이를 비춰본다.)
아무리 비춰보아도 괴발개발 적힌 글자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은 당신에게 없는 듯합니다.
종이를 내버려두고 내려가려던 찰나, 당신은 수조 하나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마음이 너무 급했던 걸까요?
太宰治:누가 적었는지, 참... (쯧, 혀를 차고 종이를 구겨버리며 계단으로 다가가는 김에 미처 살피지 않은 수조를 향해 다가간다.)
[수조 2]
두 번째 수조로 시선을 돌리면......
또다시, 익사체를 발견합니다.
좁은 수조에 기묘한 각도로 구겨저 녹아가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몸을 얼싸안은 채 하나의 덩어리처럼 굳은 시체는 얼핏 보면 젤리 같습니다.
시체를 본 다자이, 이성 판정.
太宰治:
SAN Roll
기준치:
79/39/15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太宰治:또 시체인가... (눈살을 찌푸리며 수조를 자세히 살핀다.)
관찰력
기준치:
95/47/19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체를 자세히 본 당신은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이건... 자살 마니아로서의 확신입니다.
이 시체는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자살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게, 웃고 있는 걸요...
마치 갓 세탁한 이불에 드러누워 꿈나라에 빠지기 전의 사람처럼 웃고 있었습니다.
太宰治:......안고. 수조가 '맞지' 않아서 '불편하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죽음을 말하는 건가? (서늘하게 뒤를 돌아보며 사카구치를 쳐다본다.)
坂口安吾:(2번째 수조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이 사람은 반대입니다. 너무 딱 맞아서 불편했을 겁니다. ...표정만큼은 행복해보이니 그걸로 된 셈 치면 될 것 같군요. 결국은... 자기 만족이죠.
(수조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듯, 몸을 돌려 또다시 먼저 층을 빠져나간다. 무언가를 끌고 내려간 자국이 이어져 있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坂口安吾:... 그러고 보니, 당신은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까. 저처럼 기억을 잃은 건 아닌 듯 한데.
太宰治:글쎄, 발길 닿는 곳 따라 그림자 속으로 목숨만 겨우 연명하며 돌아다니다 이곳까지 우연히 흘러들어왔을 뿐이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말하고 입을 다문다. 더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다.)
설마하니, 자네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坂口安吾:그러시군요. 하기사... 기억하진 못하지만 저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 같군요. ...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러니까, 제가 찾던 것을 발견하고 난 후에... 뭐라도 계획이 있습니까.
太宰治:돌아갈 곳이 모조리 사라졌으니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수 밖에 더 있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심하게 눈동자를 굴린다.) 자네가 찾던 것을 찾게 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고도 기억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기억을 되찾게 도움을 줘야겠지. 마인과 대적하려면 자네가 필요하니까 말이야. '이능력 특무과의 에이전트'인 자네가. (계단을 느리게 걸어 내려오며 앞서서 걷고 있는 사카구치의 모습을 바라본다. 반쯤 내리깐 눈에는 희미하게 일렁이는 불빛이 닿지 않았다.)
坂口安吾:... 안타깝게도, 그 기대에는 부응해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제가, '이능력 특무과의 에이전트'라고요. 과거에 제가 어떤 사람이었든, 무슨 일을 했든... 지금의 제게는 그 어느것도 중요치 않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저는 물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太宰治:(천천히 걸음을 멈춘다. 잠시 입을 다물고 윗층에서 봤던 것들과 사카구치의 의미 모를 말들을 곱씹는다. 고저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물 속이라... 돌아간다? (허, 웃음을 흘리며)
물이 자네의 고향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사카구치 안고?
坂口安吾:그 대답은... 고향이라는 단어에 어떤 의미를 넣느냐에 따라 달라지겠군요. 고통으로 얼룩진 것도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야. (당신의 비웃음에 약간 어깨를 움찔하는 듯 했으나, 그것도 잠시.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1층으로 들어가버린다.)
太宰治:(이제라도 사카구치를 막아서야 하는 건지 잠시 고민한다. 윗층에 있던 시체들과 물 속으로 '돌아간다'는 말, 물 공장과 이미 날짜가 한참 지난 지도까지. 이 모든 것들이 차츰차츰 한 곳으로 모여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날래게 돌아가던 머리는 마침내 한 가지 결론으로 이끌리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다자이 오사무로서는 보기 드물게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불쾌한 불안감만이 전신을 휘감고 오른다. 사카구치가 1층으로 들어간 뒤, 어둡고 축축한 계단에 서서 아주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1층 수족관을 지그시 응시하다가 무겁게 발걸음을 떼었다. 1층까지 보고 나면 이 불안하고 위태롭기 짝이 없는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으리라.)
- 1F <해저 터널&프론트>
여전히 수조가 끌린 자국이 이어진 터널을 빠져나와 1층에 도착하면,
어디선가 혈향이 짙게 풍겨옵니다.
1층에는 [출입구], [프론트], [뒷문]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층에서부터 이어진 대형 수조와 간단한 해저 터널도 있네요.
太宰治:(이건...)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피 냄새가 짙어. 진원이 어디지?)
(우선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며 대형 수조로 다가가 살펴본다. 혹시나 다른 게 있을까?)
太宰治:(짧은 순간이지만 문장을 잊지 않았다. '기억을 전부 잃은 것 같다.' '다시 만났다.' 모두 자신의 상황과 동일하다. 사카구치를 슬쩍 쳐다보고 입술을 꾹 깨문다.)
(열쇠 꾸러미를 살펴본다.)
여러 개의 열쇠가 짤랑거립니다.
이만큼 열쇠를 갖고 있었던 걸로 보아, 이 사람은 수족관의 관리자였던 모양입니다.
坂口安吾:... 열쇠나 이 사람의 휴대전화는 확실히 제가 찾던 물건은 아닌 것 같군요.
그나마 이곳을 나갈 방법이라도 생긴 것 같으니, (열쇠 꾸러미를 보며) 당신에게는 다행인 소식이겠네요.
太宰治:글쎄, (사카구치를 돌아보며) 자네가 찾던 물건도 아니고, 거기다, 귀찮게 계속 따라다녀 미안하지만 말일세. (열쇠꾸러미를 주머니에 넣는다.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유독 귀에 크게 들리는 듯한 기분이다.) 난 여길 혼자 떠날 생각이 없거든. (싱긋 웃는다.)
내가 떠나길 바랐다면 유감일세.
坂口安吾:저는... 당신이 원하는대로 움직여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이름도, 당신과 나의 관계도, 하다못해 나 자신의 이름도, 단편적인 일부 사건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당신을 돕겠습니까. (주먹쥔 손에 미약하게 힘이 들어간다.) 당신은... 떠나는 게 맞습니다. 갈 곳 없고, 할 수 있는 것 없는 무력한 죄인만 이곳에 남으면 됩니다.
잃어버린 물건 찾는 것을 돕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나 혼자 하면 됩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갈 길을 가도록 하죠. 당신과 나는 목적지가 다릅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꼭 추운 장소에 있는 사람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고, 시선은 감히 당신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바닥으로 둔 상태다.)
太宰治:이런이런, (픽 웃으며) 내가 너무 어렵게 말했나? (사카구치에게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숙인다. 숨결이 닿을 거리다. 조용히 속삭인다.)
날 도우라는 게 아닐세, 안고. 이렇게 속 편하게 다 잊은 게 섭섭해서 '친구'로서 응당 줘야할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이었어. 친구가 곤경에 처하면 당연히 함께해주는 게 친구 아닌가? 응?
자네가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게 나를 도우는 거야.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말이지. (마지막 말은 거의 잘 들리지도 않을 만큼 조그맣게 읊조린다. 움찔 떨리는 몸을 보며 입꼬리 한쪽을 슬쩍 끌어올린다.)
난 자네가 여기서 이렇게 처박혀있는 꼴을 보긴 싫거든.
(몸을 뒤로 물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는다.) 회포는 바깥에서 풀자고. 이런 음침한 곳은 나라도 싫거든. ...저것도 그렇고. (시체를 턱으로 가리킨다.) 자네도 내가 있는 편이 더 좋을 걸.
坂口安吾:(회한이 서린 웃음을 두어 번 내뱉고는) 하하...... 곤경에 처한 친구와 함께한다, 라고요... (고개를 들어 당신과 눈을 맞춘다.) ... 그래요, 일단 여길 나가도록 하죠. 정말로 당신이 나의 곤경에 참여해줄 의향이 있는지, 나가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太宰治: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날 못 믿다니, 이거 섭섭하군. (안고를 향해 웃어보이고는 산뜻하게 그를 지나쳐 해저터널의 앞으로 향한다.) 그래, 저기부터 살펴보고 나가자고.
뒷문을 열면 텅빈 방과 밖으로 향하는 문이 보입니다.
... 아니, 텅빈 건 아닌 것 같아요. 문 바로 옆에 수조 하나가 있군요.
사람 하나가 적당히 들어갈 만한 크기입니다.
내부에는 피가 잔뜩 고여 있습니다.
피에 젖은 손자국, 발자국, 흩뿌려진 붉은 물감, 군데군데 떠오른 살점과 핏줄들.
누군가 악취미적인 목욕이라도 즐긴 걸까요?
太宰治:(이 기묘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이 이젠 놀랍지도 않다. 정신이 피로해지는 기분에 다자이는 피에 젖은 손자국과 발자국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말없이 수조를 쳐다보다가 뒤쪽에 있는 사카구치를 향해 질문을 하나 던진다.)
어때, 안고. 이 수조는 잘 '맞았던' 것 같나? 자네의 의견이 궁금한데.
坂口安吾:... 이 수조는 둘 다 아닙니다. 제 의견을 물으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닥 달갑지는 않군요. (뭐라 말을 더 이으려다가 꾹 참고, 채근하듯 말을 붙인다.) 여기에도 제가 찾는 건 없습니다. 계속 보고 계실 겁니까? 비위도 좋으시군요.
太宰治:저런, 이보다 더한 것도 더 보았을 텐데 엄살은. (미련없이 몸을 돌려 빠져나간다.)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 미안하게 됐어.
대망의 출입구를 살펴보도록 하지. 자네가 찾는 게 꼭 있었으면 좋겠군.
(출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출입구에는 자물쇠가 달린 쇠사슬이 몇 겹으로 나 있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이곳에 들어올 때는 저 뒷문을 통해서였죠.
太宰治:아... 여기에 쓰는 열쇠인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다)
열쇠를 여럿 뒤적거리다 보면 그중 딱 하나가 자물쇠에 들어 맞습니다.
열고 보니 벽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오네요.
검고 질척거리는 무언가로 벽이 가득 차, 마치 검은 벽처럼 보입니다.
수조를 찾아 헤매는 자들에게.
이곳에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에게서 비롯된 붉은 물이 당신을 구제할 것이다.
알 수 없는 문구입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太宰治:(붉은 물...? 뒷문에 있던, 피로 가득 찬 수조가 뇌리에 스친다. 설마...)
안고. 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자네는 알고 있나?
자네가 찾던 게 어쩌면...
坂口安吾:...... 남은 이야기는, 나가서 마저 이야기하시죠.
太宰治:...... 그래. (굳은 얼굴로 문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끼이익, 신경을 긁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바닷바람이 당신의 뺨을 스칩니다.
湐
바다로.
수평선 저 너머로, 검은 모래와 물이 펼쳐져 있습니다.
당신과 안고는 검게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봅니다.
마치 세상의 끝 같습니다.
坂口安吾:...... 파도는 아홉 번째마다 크게 밀려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어째서인지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남은 기억이 고작 이런 거라니, 우습죠.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신다.) 당신은... 친구가 곤경에 처하면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었죠. 그럼 감히 묻겠습니다. 우리가... 친구인가요?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수평선을 응시한다. 고개를 돌릴 용기까지는 없다는 듯이.) 우리는... 어떤 관계인가요. 나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太宰治:(따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정면만 응시하는 사카구치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너와 나는 무슨 관계였던가. 재즈가 흐르는 바에 앉아 실없이 농담을 주고 받았던 사이인가, 이젠 농담은커녕 말 한마디 가벼이 주고 받기조차 어렵게 된 사이인가... 고작 이정도일 뿐인가. ) ......파도 같은 사이였지, 우리는. 자네 말처럼, 주기적으로 크게 밀려오는 거센 파도, 그 단 한번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으니. (사카구치와 마찬가지로 수평선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자국이 남아. 시간이 지나져서 한껏 흐려질지는 몰라도 모래알의 위치는 얕은 파도 한번에도 뒤바뀌는 법이거든.
친구, 친구라... 친구였었지. 이제 와 무슨 관계냐고 묻는다면, ...그래. 말하자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서로를 잊을 수 없는 사이라고나 할까. (헛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구두 앞코로 검은 모래를 툭툭 찬다.) 만족스러운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군.
坂口安吾:(당신의 대답을 듣고 몇 번이고 곱씹는다.) ... 제 질문에 답하셨으니, 이제는 제가 대답할 차례겠군요.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요.
찾던 것은... 사진 한 장입니다.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그렇지만 이제 와서 무엇이 중요할까요, 사진은 사라졌고 나는 그 소중한 걸 잃고도 찾아야 한다는 강박만 느낄 수 있을 뿐인데. 사진에 담긴 것 어느 하나 기억하지 못하는데... ... 당신은 우리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사이라 하셨죠. 저는... 되도록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나는 늘 죄인일 수밖에 없으니, 그저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버리길 원합니다. 그 편이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겁니다.
太宰治:(사진이라는 말에 멈칫한다. 실소를 터트린다.)
파도에 휩쓸려서, '사라져'? (사카구치에게 다가서며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자신을 향해 휙 돌린다 지금껏 보여주었던 태연하고 여유로운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아니, 안될 말이지. 안고. 우리가 찍은 그 사진이 나와 자네 두 명을, 아니... 세 명을 이어주는 유일한 증표인데.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다고 해도 무엇이 달라지지? 자네가 이대로 모든 것을 잊고 편한 선택을 하는 건 내가 용납 못 해.
坂口安吾:(붉은 빛으로 물든 눈가를 감출 새도 없이 당신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무엇이 달라지느냐고요, 당신은, 당신은... 날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원한 숙제를 껴안고 끝없이 잠들어버리는 것이, 당신에겐 회피로 보입니까? 나는 이보다 더한 절망을 원치 않습니다. 지금 짊어진 것만 해도 이미 차고 넘쳐서 무너져내린지 오래인 것을요. 그러니... 무너진 채로 최후를 맞겠다는 겁니다. ... 당신에겐 이보다 더 좋은 복수는 없을텐데요.
파도가 밀려옵니다.
하나, 둘, 셋... ...여덟, 아홉.
아홉 번째에서 커다란 물결이 일더니, 거품이 두 사람의 발목을 적십니다.
얼어붙을 듯 차갑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고개를 듭니다.
눈앞에 유리관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영화의 장면이 바뀌듯이, 무대의 막이 전환되듯이 자연스럽게......
원래 위치했으나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요?
자세히 보니, 관이 아니라 수조예요.
세로로 길고 폭이 좁아 한 사람이 누우면 딱 적당할 것 같습니다.
마치, 사카구치 안고를 위해 준비한 것처럼, 준비된 것처럼.
坂口安吾:(당신에게 여전히 붙들린 채로 고개를 돌린다.) 저를 포함해 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일종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바다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 달라질 건 없습니다. 세상은 이미 멸망했고, 당신과 나도 그러하니.
太宰治:...(어떠한 의지도 없는 눈을 들여다보다가 눈썹을 일그러트린다. 어깨를 억세게 붙잡은 손을 놓아버린다.) ...사카구치 안고. 자네가 내 과거의 기록을 지운 건 말하지 않았어도 진작에 알고 있었어. 덕분에 내가 오다 사쿠의 유언대로 살 수 있었지. 난 과거를 지우고 여기까지 왔다네. 비록 모든 게 무너졌다고 해도 내가 살아있는 것도 그것 때문이야. 헌데 자네는 이대로 죽겠다고, 하! (발을 움직이자 발목까지 차오른 물이 찰방거리는 소리를 낸다.)
(수조로 천천히 다가가며) 내가 도움을 주지. 자네는 기록을 업으로 삼는 이였지. 기록과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으로 살아가게. 죄인이라고? 그렇다면 더더욱 살아서 속죄해야지. 기억도 못하면서 대체 어떻게, 무엇을 위한 죄인지 감히 입에 올릴 수는 있나? (발밑에 있는 검은 돌 하나를 주워 수조를 힘껏 내리친다.)
(손에서 피가 흐른다)
坂口安吾:뭐하는 겁니까, 다자이 군! (황급히 뛰어가 당신의 팔을 잡아챈다.) 피가, 나잖습니까.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太宰治:뭐하긴, 자네의 편한 죽음을 막는 중이지. (사카구치의 손을 뿌리치며 온화하게 말한다.)
坂口安吾:편한, 죽음이라고요?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울분을 그대로 토해낸다.) 당신이, 다자이 군 당신이 뭘 안다고...! 나라고 해서, 이 모든 것들이 달가운 줄 압니까? 처음부터 싫은 일 투성이였어요. 당신들 둘을 제외하고는, 전부, 모두, (깨진 수조를 움켜쥐며 숨을 거칠게 들이쉰다.) 내가 그의 죽음 앞에서 어떤 표정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세상에 멸망하고 이 모든 것들이 무로 돌아가 존재했던 흔적마저 사라진다 해도 저는… 그래요, 당신 말대로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제 심장 가장 깊은 곳에 기록해둘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내 기분을 알아? 오다 사쿠 씨를 죽여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이 도시의 멸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내 심정을 아느냐고! 영원히 씻을 수도 없는 죄를 짊어지게 된 비겁자가 죽지 않는다면, 그 삶에는 대체 어떠한 가치를 남겨둘 수 있죠? 대답해보세요. 다자이 군! (격정적인 목소리로 포효하듯 외친다. 깨진 유리를 쥔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눈물도 함께 흐른다.)
太宰治:(길게 이어지는 외침을 들으며, 중간중간 나오는 익숙한 이름에 어깨를 움찔떤다. 그러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다...) 역시나. 자네, 기억이 돌아왔군?
坂口安吾:... ... 지금 그게 중요하십니까?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살짝 닦아내며 조소한다.) 애초부터, ...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거짓입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어떻게 당신을 잊어버릴까요.
太宰治:......그래. 확인하려고 과격한 방법을 쓰게 된 건 미안하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피범벅이 된 검은 돌을 발치에 떨어뜨린다.)
대답해보라고 했나? 좋아. 대답해주지. 이 삶에 가치 같은 건 없어. 주어졌으니 살아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네.
이건 자네를 소중히 여기고 귀애하여 하는 말도 아니고, 그 알량한 논리를 반박하고자 하는 말도 아냐. 여기서 죽는다고 치지. 그럼 자네는... (숨을 한 번 들이킨다.) 오다 사쿠의 얼굴을 당당히 볼 수 있나? 오다 사쿠를 만나면 뭐라고 할텐가.
(사카구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답한다.) 이젠 내가 한 가지 물어보지.
이 죽음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坂口安吾:그건, ... ... (분노와 함께 말도 잃어버린 듯, 고개를 푹 떨군다. 모래 바닥이 부분부분 짙은 색으로 물든다.) ... 없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 이런 충고를 다른 누구도 아닌 다자이 군 당신에게 들으니 세상이 멸망했다는 실감이 새삼 드는 군요. 죽고싶어 했던 것은 당신이었는데.
太宰治:글쎄, 이래보여도 이젠 사람을 구하는 몸이거든. 친구들, 덕분에 말이지.
(심드렁하게 중얼거린다.)
坂口安吾:... 같이 살아주실 겁니까.
太宰治:넓은 아량을 베풀어 한마디 남겨주자면, 그래. 같이라고 하니 좀 징그럽긴 하지만 말일세. 나중에 오다 사쿠를 봤을 때 들려줄 재미난 이야깃거리 하나 만들었군. 안 그런가? (사카구치를 돌아보며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린다)
坂口安吾:당신은, 정말...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비질비질 나온다. 이런 감정은 어떻게 주체할 수 있는 걸까. 고개를 들어 당신과 시선을 마주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정으로.) 그래요, 다자이 군의 판결에 따르도록 하죠...